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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사 1단계 한국사]4. 고려시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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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사 1단계 한국사]4. 고려시대

연계중 2017. 3. 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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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합


1. 고려의 성립과 민족의 재통일


(1) 고려의 건국


1) 왕건의 등장 : 궁예의 신하로 후백제의 배후 지역인 금성(나주)을 점령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시중의 지위에 오름, 궁예의 실정(미륵불을 자칭, 실정 거듭 -> 민심 상실)


2) 고려 건국(918)

ㄱ. 신하들이 궁예를 내쫓고 왕건을 국왕으로 추대

ㄴ. 고려 건국: 연호 - 천수, 수도 - 송악


(2) 민족의 재통일


1) 왕건의 통일 정책 : 확고한 토착 세력을 기반, 세금 감면, 후백제 공격, 신라와의 화친 정책

2) 신라의 멸망 : 후백제의 공격으로 쇠약 -> 경순왕의 고려 투항(935)

3) 후백제의 멸망 : 왕위 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툼 -> 견훤은 큰아들인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갇힘 -> 견훤의 고려 도주 -> 고구려의 후백제 격파 -> 후삼국 통일(936)



2. 태조의 정책과 고려 초기 왕권 강화 과정


※ 고려 국왕의 업적


태조 왕건(자주적 인물)


민생 안정 : 세율을 1/10로 낮춤, 흑창 실시

호족 통합 :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 실시, 정략결혼(29명의 부인), 사성 정책

북진 정책 : 서경(평양) 중시, 청천강 ~ 영흥의 국경선 확보, 발해 유민 포용

문화 정책 : 불교 · 도교 · 풍수지리설 공존, 개방적 · 주체적 문화 수용

훈요 10조 : 정계 , 계백료서

불교(연등회, 팔관회)


광종


노비안검법 실시 :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를 양민으로 해방 -> 호족 세력 약화, 국가 수입 기반 확대

과거 제도 시행 :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 등용 -> 신구 세력의 교체 도모

주현공부법, 백관의 공복 제정, 황제 칭호, 독자적 연호 사용(광덕 · 준풍)


성종


최승로의 시무 28조 채택 : 유교의 진흥과 불교 행사 축소

 지방관 파견(12목), 향리 제도 마련

 불교(정신), 유학(정치) -> 연등회와 팔관회를 임시 폐지

 국자감 정비

과거제 정비, 경학 박사와 의학 박사 파견(지방)

개경과 동일한 정무 조직인 분사를 서경에 설치



※ 거란의 침입과 격퇴


10세기 동아시아의 정세 : 친송(문화적 · 정치적 요구)

     적대관계 - 거란(북진 정책 추진, 정종 때 광군 조직)

     국방 강화 : 광군 조직(거란 대비), 국경 지대에 성 구축


거란의 침입과 격퇴 : 1차 침입(993) : 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 확보

2차 침입(1010) :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재침입 -> 개경 함락 - > 양규의 활약

3차 침입(1018) :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격퇴(1019)

결과 : 고려 · 송 · 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 유지, 나성(개경)과 천리장성(압록강~도련포) 축조



※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개척


여진 정벌 : 별무반 편성(윤관) -> 여진 토벌, 동북 지방에 9성 축조(1107)

여진의 금 건국(1115) : 금이 고려에게 군신 관계 요구 -> 이자겸, 김부식 등이 사대 요구 수용




2. 고려 후기의 사회 변화


1.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


※ 이자겸의 난(1126) : 경원 이씨 집안이 왕실과의 거듭된 혼인관계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자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이자겸은 이를 알아차리고, 척준경과 난을 일으키는데, 인종이 척준경을 설득시켜 이자겸을 축출시키고, 이자겸 세력은 몰락하게된다.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 이자겸의 난 이후 개혁 정치 과정에서 중앙 보수적 관료들과 지방 출신의 신진 관료 사이에 대립이 발생 하게된다.

개경파(김부식)는 중앙의 문벌 귀족으로 유교 사상 기반으로 사대 정책을 주장하고 있고, 신라 계승 의식을 표방 하였다. 서경 천도를 반대 하고, 유교 이념을 통한 사회 질서 확립을 주장한다.

서경파(묘청,정지상)는 지방 출신의 개혁적 관리로 풍수지리설, 전통 사상으로 북진 정책을 주장한다.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 하였고, 왕권 강화와 혁신적 제도 개혁 주장을 한다. 서경 천도, 금 정벌, 칭제 건원을 주장한다.

묘청이 서경 천도를 주장하자 김부식등이 반대하고 묘청은 서경에서 '대위국'을 일으킨다. 이를 묘청의 난이라 부르고 묘청은 관군에 의해 진압된다.


2. 무인 정권의 성립


의종의 실정과 문벌 귀족사회의 모순이 심하되고, 무신에 대한 차별, 하급 관리에 대한 낮은 대우로 인해 무신 정변이 일어나게 된다. 무신 정변 이후 부터를 무신 집권기라 한다.


※ 최씨 무신 집권


최충헌 : 봉사 10조 개혁안 제시, 농민 항쟁 진압, 교정도감 · 도방 설치, 대토지 확대

최우 : 정방(인사권) 설치, 교정도감(최고 집정부), 도방(신변 경호), 삼별초(군사 기구), 정방(인사 기구), 서방(문신 등용) 등


특징 :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나 국가 통치 질서는 악화, 권력 유지를 위한 체제 정비에 집착, 국가 발전이나 민생 안정에 소홀 -> 하층민들의 봉기를 일으킴


※ 무신 집권기 하층민의 봉기


<농민의 봉기>


서북 지방의 봉기 : 서경 유수 조위총의 반란 -> 농민 가세 -> 대규모 봉기로 확산

망이 · 망소이의 봉기 : 공주 명학소의 주민들이 무거운 조세 부담에 반발 -> 한때 충청도 일대 점령 -> 개경까지 공격 시도

김사미와 효심의 봉기 : 경상도의 운문(청도)과 초전(울산)을 중심으로 봉기


<천민의 봉기>


전주 관노비의 봉기 : 지방관의 가혹한 수탈에 반발

만적의 봉기 : 사노비인 만적이 신분 해방 운동 주도 -> 사전에 발가되어 실패


<삼국 부흥 운동>


신라 부흥 운동(이비 · 패좌), 고구려 부흥 운동(최광수), 백제 부흥 운동(이연년 형제)


3. 몽골의 침입과 저항


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을 구실로 고려에 침입하게 된다.


1차 침입(1231) : 백성과 관군과 함께 항전 -> 귀주성에서 박서의 저항, 충주 관노비들의 저항

2차 침입(1232) : 강화도 천도, 처인성 전투에서 김윤후와 처인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 사살

3차~7차 침입 : 몽골은 금을 정복한 후 고려를 적극적으로 공격 -> 충주성에서 김운후와 노비들이 항전


결과 : 문화재 소실(대구 부인사 대장경 판목, 경주 황룡사 9층탑 등), 인명 및 토지 상실, 팔만대장경 조판(부처의 힘으로 몽골군 격퇴 기원), 원 간섭기의 시작


삼별초의 항쟁 : 정부의 개경 환도에 반발, 강화도(배중손) -> 진도 -> 제주도로 이동하며 항쟁



4. 원 간섭하의 고려 사회


(1) 원의 내정 간섭


1) 영토 상실 : 동녕부 · 탐라총관부(-> 충렬왕 때 회복), 쌍성총관부(-> 공민왕 때 회복)

2) 내정 간섭 : 정동행성 설치, 다루가치 파견, 왕실 칭호와 관제 격하

3) 영향 : 자주권 훼손, 몽골풍 유행 , 조혼의 풍습

4) 수탈 : 일본 원정에 전쟁 물자 · 인적 자원 동원, 막대한 공물 · 공녀 요구, 응방 설치(매징발) 등


(2) 공민왕의 개혁 정치


1) 배경 : 권문 세족의 농장 확대, 원 · 명 교체기

2) 반원 자주 정책 : 친원파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관제 복구, 몽골풍 금지

3) 왕권 강화 정책 :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 설치, 권문세족 억압, 신진 사대부 등용

4) 결과 : 권문세족의 반발로 실패


(3) 신진 사대부의 성장


1) 등장 : 무신 정권기 부터 등장 -> 공민왕의 개혁 정치에 힘입어 지배 세력으로 성장

2) 성향 : 성리학 수용, 과거를 통해 정계 진출 -> 권문세족의 비리와 불법 견제

(4) 홍건적의 침입과 격퇴


1) 홍건적 : 원 말기 한족의 농민 반란군

2) 홍건적이 개경까지 침입(1·2차) ->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란 -> 정세운, 이방실 등이 격퇴


(5) 왜구의 침입과 격퇴


1) 왜구 : 쓰시마 섬에 근거를 둔 해적

2) 왜구의 침입 : 남서 해안에 침입하여 노략질, 강화도 약탈, 개경 위협 -> 조세 운송 곤란으로 국가 재정 궁핍

3) 왜구의 격퇴 : 최영(홍산 전투), 이성계(황산 전투), 최무선(화포 사용), 박위(쓰시마 섬 정벌) 등이 격퇴



3. 고려의 지배 체제와 사회


1. 통치 체제의 정비


(1) 중앙 정치 제도


도병마사(국박)와 식목도감(법제 제정) - 고려의 독자 기구

중서문하성

재신 : 국가 중요 정책 의논 · 결정

낭사 : 정치의 잘못 비판

상서성

이부 : 문관 인사(임명과 승진 등)

병부 : 무관 인사(임명과 승진 등), 군사에 대한

호부 : 인구 조사, 조세 징수

형부 : 법률과 재판, 노비 문제

예부 : 의례와 학교, 과거, 외교

공부 : 물품 제작 및 조달, 건축과 토목

중추원 : 군사 기밀, 왕명 전달

어사대 : 풍속 교정, 관리 감찰

삼사    : 곡식 · 화폐의 출납, 회계


대간 제도 : 중서 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으로 구성 -> 간쟁(왕의 잘못 비판), 봉박(잘못된 왕명 돌려보냄), 서경(관리임명, 법령 개폐 동의 권한)


(2) 지방 통치제도(이원적 구성)


1) 5도 : 일반 행정 단위, 안찰사 파견, 주 · 군 · 현 설치 ->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는 속현이 많음

2) 양계 : 북방 국경 지대에 설치, 병마사 파견

3) 특수 행정 구역 : 향 · 부곡 · 소 -> 주현의 수령이 향리를 이용하여 간접 통제


(3) 군사 제도


1) 중앙군 : 2군(국왕 친위 부대), 6위(수도 경비와 국경 방어) -> 직업 군인으로 세습, 군인전 지급

2) 지방군 : 5도의 일반 군현에 주둔하는 주현군(치안업무와 잡역), 양계에 주둔하는 주진군(변경 수비)



(4) 관리 임용 제도


1) 과거 제도 : 유학적 지식(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던 제도

2) 종류 : 문신 - 제술업 · 명경업, 기술관 - 잡업

3) 응시 자격 : 법제적으로 양인 이상 응시 가능, 실제로는 제술과 · 명경과에 주로 귀족 · 향리의 자제 응시, 백정 농민은 주로 잡과에 응시

4) 음서 제도 : 공신과 종실의 자손, 5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손을 대상으로 무시험 등용 -> 관료의 지위 세습, 고려 관료 체제의 귀족적 특성을 보여줌



2. 고려의 경제 정책


수취 제도

 조세 : 비옥도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생산량의 1/10 징수

 공물 : 호 단위로 토산물 징수, 별공과 상공

 역 : 16~60세의 남자에게 부과, 군역과 요역 

토지 제도의 정비 과정

 역분전(태조) : 국가적 토지 제도가 아니라 공신들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분급

 시정 전시과(경종) : 관직 고하와 인품을 기준으로 전·현직 관료에게 전지와 시지 지급

 개정 전시과(목종) : 관직만 기준으로 전·현직 관료에게 지급, 지급량 재조정

 경정 전시과(문종) : 현직 관료에게만 지급, 지급량 감소, 무신 대우 개선

전시과 제도

 내용 : 봉사하는 대가로 관료를 18등급으로 나누어 토지(전지·시지)를 나누어주는 제도

 운영 : 수조권만 지급, 토지를 받은 자가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날 때는 토지를 국가에 반납

 토지의 종류와 대상

 과전(관리의 보수), 공음전(5품이상 관료, 세습 가능), 한인전(6품 이하 하급 관료 자제로 관직이  없는 자), 군인전(군역 대가, 세습 가능), 구분전(하급 관료와 군인 유가족), 내장전(왕실 경비), 공  해전(관청 경비), 민전(개인 사유지) 

 농업 기술의 발달

 시비법 발달(녹비 · 퇴비 사용), 2년 3작의 윤작법 보급, 고려 말 남부 일부 지방에 이앙법(모내기) 보급, 농상집요 소개(이암), 고려 말 중국에서 목화씨 전래(문익점)

 화폐의 주조

 화폐 주조 : 성종 때 건원중보 -> 숙종 때 삼한통보·해동통보·해동중보·활구(은병)

 결과 : 유통 부진 -> 곡식과 삼베가 주된 교환 수단 

무역 활동 

 무역항 : 벽란도(예성강 하구) -> 아라비아 상인도 왕래함

 대송 무역 : 대외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 차지, 서해안의 해로 이용, 왕실과 귀족의 수요품 수입(  비단, 서적, 자기 등), 수공업품과 토산물 수출(종이, 인삼 등)

 거란과 여진 무역 : 은을 수입하고 농기구·식량 수출

 일본 무역 : 11세기 후반부터 내왕 -> 수입(수은, 황 등), 수출(식량, 인삼, 서적 등)

 아라비아(대식국)와의 무역 : 수은, 향료, 산호 등을 수입하여씅며, 고려 이름이 서양에 '코리  아'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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